20세기 사무실의 주역, 주판이 사라지다

20세기 산업시대는 기술이나 기능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무슨 기술(또는 기능)이든 하나만 갖고 있으면, 속된 말로 먹고사는 데 걱정이 없었다. 망치만 잘 두드려도, 대패질만 잘 해도 얼마든지 직업을 구할 수 있는 것이 산업사회였다.

물론 21세기인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아무래도 기술이나 기능의 중심이 아날로그식 보다는 디지털식으로 바뀌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건설현장이나 공장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기술자나 기능공보다는 사무실의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작업을 하는 「컴퓨터도사」가 더 대접을 받고 있는 시대가 바로 요즘이다.

한때 각광받던 직업이나 기술·기능이 세상이 바뀌면서 푸대접받거나 쓸모 없이 되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주판이 아닌가 싶다. 사실 80년대까지만 해도 주판을 잘 놓으면 취직은 보장되었다. 경리업무를 보려면 「주판도사」가 있어야 했기 때문에 그 수요는 무궁무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가 고교를 졸업하던 60년대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이전이나 그 이후에도 주판을 잘 놓는 사람은 얼마든지 은행이나 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었다. 그래서 공부하기 싫은 사람은 중학교를 졸업한 뒤 취직이 잘 되는 상업고등학교로 진학하는 게 당연한 일로 여겨졌었다. 잘 알다시피 서울상고, 선린상고, 덕수상고, 대구상고, 부산상고 같은 학교는 취직 잘 되기로 소문난 학교가 아니었던가.

인문고 출신들은 대학에 진학하거나 재수하는 동안에 상고출신들은 졸업하자마자 은행 같은 곳에 취직하여 넥타이를 매고 근무하면서 상당한 액수의 봉급을 받았다. 그래서 가난한 학생들에게는 상고가 선망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70년대 이후 공업화가 진행되면서 기능공도 취직이 잘 되자 공업고등학교로 진학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상고는 그래도 취직을 위한 관문이라는 인식에는 변함이 없었다.

최근 부산에서는 전통을 자랑하고 있는 부산상고와 경남상고가 인문계 고교로 전환하려다가 당국의 반대로 무산된 일이 있다. 학교측이나 동문들이 오랜 전통을 외면하고 인문고로 바꾸려했던 것은 바로 지금의 체제로는 경쟁력을 지닐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수많은 상업고교들이 몇 년 전부터 이 시대에 적응하며 살아남기 위해 「정보산업고」등으로 개명을 하고 있는 형편이다.

상고출신들이 왜 취직이 잘 되었는가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주판을 잘 놓았기 때문이다. 일반학과공부는 물론 특히 부기같은 것을 잘 해야했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은 단급 또는 1·2급 정도의 주산실력을 갖추는 일이었다. 노동부에서는 매년 치르는 국가기술자격시험에 주산을 포함시키는 것은 당연한 처사였다. 이 시험을 통해 일정한 급수의 실력을 인정받는 것은 경리를 보는데 필요한 「면허」나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그런데 최근 국가자격시험에서 주산이 폐지되었다. 그 이유는 지원자가 없기도 하겠지만 컴퓨터시대에서는 아무 필요 없는 기능이기 때문이다. 취직할 때 가장 큰 무기로 작용했던 주판이 자취를 감추게 되고 국가자격시험조차 없어지다니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계산에는 만능인 전자계산기가 있는데 주판은 더 이상 존재가치가 없게 된 것이다.

10년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직장에서는 경리장부를 정리할 때 반드시 주판을 썼고, 일반 가정에서도 주판 하나쯤은 비치해놓고 있었다. 많은 돈을 다루는 은행에서도 전자계산기보다는 주판을 사용하는 직원이 훨씬 많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 둘씩 사라지더니 이제는 아예 구경조차 하기 힘든 골동품처럼 된 것이 바로 주판이다.

해방이후 지금까지 주산자격증을 딴 사람은 3백만명 가량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주판을 잘 놓아 일자리를 구했던 사람도 절반은 넘으리라고 보아진다. 컴퓨터와 전자계산기에 자리를 빼앗기고 지금은 찾아보기조차 어려운 주판. 주경야독(20, 30년전에는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사람이 많았음)하며 애써 쌓은 주산실력으로 직장을 마련했던 40, 50대 중년들은 오늘의 이 같은 현상에 대해 남다른 감회를 가질 것이다.

필자가 지금까지 주산얘기를 하다보니 과연 지금의 신세대들이 주판이 무엇인지를 아는가 하는 것조차 궁금해진다. 백과사전에 보면 「장방형의 틀을 아래 위로 나누어 동글납작하거나 다이아몬드형으로 나무나 뼈를 깎은 작은 알을 위칸에 1개 혹은 2개, 아래칸에 4개 또는 5개를 꿰는데 철사나 대오리로 꿴 뀀대의 숫자가 21∼27개인 계산기구」라고 되어있다. 그러나 이런 설명도 실물을 보기 전에는 알아듣기가 어려울 것 같다.

주판의 역사는 꽤나 오래된다. 기원전 3, 4천년경에 메소포타미아에서 널빤지에 모래를 놓아 셈하는 토사주판이 있었고, 로마에서는 기원전 4세기에 주판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은 후한말에 사용했으며 우리나라에는 조선 선조때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최근까지 사용한 주판(아래판에 4알짜리)은 일제때인 1932년 조선총독부가 보급한 것이고 그 이전부터는 5알짜리 주판을 사용해 왔었다.

주산시험이 없어졌다는 소식을 들으니 지난해 8월 대전 유성관광호텔에서 한국·일본·대만 3국간에 벌어졌던 제21회 국제주산경기대회에서 개인우승을 차지한 일본인 히라노 히토시씨(28·홋카이도 거주)가 한 말일 떠오른다. 그는 우승소감에서 "첨단 컴퓨터시대에도 주산은 여전히 인간의 능력개발에 큰 도움이 된다"며 주판찬양론을 폈다.

아이러니칼하게도 히라노씨의 직업은 주판을 밀어낸 컴퓨터 프로그래머이다. 주산실력 10단인 그는 우승직후 있은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주산은 결코 골동품이 아니라 끈기와 인내심을 몸에 배게 해 사회생활에도 큰 도움이 되는 도구"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는 달리 컴퓨터에 밀려버린 주판이「골동품」취급을 받고 있는 사실은 부인하기 힘든다.

시대상황이 크게 달라지면서 자취를 감춘 것이 어디 주판뿐인가. 타자기 역시 주판처럼 어느 직장이든 반드시 갖춰야 할 필수품이었으나 지금은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물건이 돼버렸다. 이 같은 현상은 우리사회가 이미 컴퓨터 없이는 살아가기 힘들어진 정보화사회가 되었음을 의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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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일
월간 인터넷라이프 편집인.편집국장
2000.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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