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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칼럼 / 계절 잊은 '불청객' 황사
<2001년5월26일자>
이탈리아 고대도시 폼페이는 기원(紀元)을 전후해 로마를 중심으로 꽃피웠던 헬레니즘문화의 타임캡슐이나 다름없다. 서기 79년 베수비오화산의 대폭발로 전 시가지가 매몰된 폼페이 유적은 16세기 말 강물을 끌어오기 위해 터널을 파던 건축가 도메니코 폰티나에 의해 발견됐다. 본격적인 발굴작업은 2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인 1748년에 시작됐으나 유물을 찾아내는 데 몰두했다. 1860년 이탈리아의 고고학자 주세페 피오렐리가 발굴책임을 맡으면서 체계적인 발굴의 기틀을 마련하게 됐다. 서울 풍납토성은 학계에서는 백제 초기 수도였던 하남 위례성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의 폼페이 유적'으로 불릴 만큼 역사적 가치가 높다는 평가다. 하남 위례성은 백제가 고구려에 밀려 수도를 웅진(공주)으로 옮기기까지 493년간의 백제 수도로 알려져 있으나 최근까지 그 위치가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다. '북으로는 한강이 흐르고 동으로는 높은 산, 남에는 너른 평야, 서로는 바다를 향한 천험의 자리'라는 '삼국사기' 기록을 살펴보면 백제의 첫 도읍지 하남 위례성이 들어설 곳은 잠실평원밖에 없다는 고고학자의 주장도 이를 뒷받침해 준다. 풍납토성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 일부가 유실되면서다. 1963년 토성만 사적 11호로 지정하고 몇 차례 복원 계획을 발표했으나 말만 나왔을 뿐 실제적 조치는 없었다. 1997년 이후 여러 차례 발굴을 통해 한성백제 시기의 성곽인 풍납토성의 중요성이 밝혀졌다.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발굴에서는 풍납토성이 폭 40m가 넘는 초기 백제의 성벽으로 드러났고 '대부(大夫)'라는 고대 궁중 최고의 관직명이 쓰인 토기가 출토되어 유적임이 다시 확인됐다. 특히 지하 4m 터에서 '여(呂)'자 모양으로 돌을 쌓은 길이 16m 짜리 대형 건물 터가 발견됐는데 이는 경주 황룡사나 익산 미륵사지 같은 대형 절터를 제외하고는 당시 최대 규모의 지상가옥이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이곳을 문화재 보전지역으로 지정하는 작업을 서둘렀어야 했는데도 문화재청은 문화재 보존과 현지 주민의 재산권 보호라는 두 원칙 사이에서 엉거주춤하게 미뤄 오다가 무참하게 훼손되는 어처구니없는 '문화적 테러'를 당했다. 문화재청이 서울시와 협력하여 발굴비를 국가가 부담하도록 유도하거나 국가가 토지를 매입해 주민들의 재산권 침해를 보상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등 대책을 마련했어야 했다. 훼손 이후 비난 여론이 들끓자 정부는 풍납토성 내부 재건축 지역을 사적지로 지정해 보존하고 주민과 아파트 건축 조합원에게는 정부가 재산권에 대한 보상을 해주는 방식으로 풍납토성 문제를 해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원님 지나간 뒤 나팔부는 격'으로 해법을 내놓았지만 풍납토성이 역사적 전면에 떠오르게 돼 다행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