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영화제와 한국영화

지난 2월 22일에 폐막된 베를린 영화제에서는 우리영화 열 네편이 상영되었고 5월 13일에 개막된 제51회 칸 영화제에는 네편의 한국 영화가 선보이고 있다. 두 영화제 모두 이렇게 많은 한국영화가 소개되기는 반세기 역사상 처음있는 일이다.

5월 초, 북미 대륙의 서쪽 샌 프란시스코에서는 구로사와 아끼라 상을 수상한 임권택 감독의 다섯편의 영화가 관객을 열광시켰는가 하면 8월 말에는 이 대륙의 동녘 몬트리올에서 열편의 우리영화가 열광의 도를 더해 줄 것이다. 주변이 온통 어둡고 우울한 소식 뿐인데 지구촌의 동과 서에서 날아든 영화계의 소식들은 박세리의 낭보만큼이나 신선하다.

미국의 아카데미영화상이 그 화려함에서 으뜸이라면, 프랑스의 칸 영화제는 권위면에서 정상이다. 그런 만큼 배우들은 LA 쉬라인 오디토리움의 붉은 카펫을 걸어 보기가 소원 이라면 감독들은 뤼미에르 대 극장의 객석에서 기립 박수를 받아 보는 일이 평생의 꿈이다. 질 자콥 칸 영화제집행위원장이 헐리우드 리포터 기자에게 '해외 판매가격이 100인 영화가 칸에 초대되면 그 가격은 110으로, 평론과 관객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게되면 130으로,중요한 상을 받으면 140으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면 150이 된다'고 오만하게 말했듯이 전 세계에서 칸에 몰려 든 영화 제작자와 배급업자들은 그들의 영화가 좋은 평가를 얻기 위해 치열한 로비활동을 벌인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골라 온 2천편중에서 다시 엄선하는 백여편속에 포함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84년이후 칸에서 소개된 우리영화는 이두용감독의 '물레야 물레야', 배용균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89), 양윤호 감독의 '유리'(96), 전수일감독의 '내안에 부는 바람'(97)등 네편뿐이며 모두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대 받았었다. 그런데 금년에는 주목할만한 시선에 홍상수감독의 '강원도의 힘'이, 15인 감독주간에 이광모감독의 '아름다운 시절'이, 비평가주간에 허진호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가, 본선 단편 경쟁부문에 조은령감독의 '스케이트'등 네편이 초청받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며 충격적이다. 89년 이래 작품 수준이 가장 높다고 평가받는 이번 영화제에서, 특히 대만, 중국, 일본, 이란, 인도네시아의 한 두편을 제외하고 아시아 영화가 거의 없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영화가 대거 초청된 것이 더욱 돋보인다.

그러나 칸 영화제의 꽃인 경쟁분야 본선의 문턱은 아직도 높다. 개·폐막 영화를 포함한 비경쟁 8편과 경쟁 22편의 본선 진출 영화의 수준에 도달하기에는 우리 영화가 뛰어 넘어야 할 벽은 아직도 두텁다

우리 영화 4편이 모두 2,30대 젊은 감독의 첫 번째 또는 두 번째 작품이며, 한결같이 영상미가 돋보이는 아름다운 영화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작품의 성숙함이나 완성도가 뒤진다는 평가도 무시할 수 없다. 이번 영화제에서 거장들의 완성도 높은 영화와 40대의 파격적인 영화가 함께 선 보였다는 점, 본선에 오른 30편 중 90세의 마노엘 올리베이라 포르투갈 감독을 비롯한 60대 이상의 노장감독 작품이 8편에 달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특히 일본 이마무라 쇼헤이의 '간쬬 선생', 대만 챠이 밍 량의 '구멍', 중국 후샤오시엔의 '샹하이의 꽃'등 본선에 오른 아시아 영화 세편이 모두 프랑스의 영화전문 TV채널인 카날 풀루스의 지원을 받은 영화라는 점등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뤼미에르 대 극장의 상영이 끝날 때 마다 3천여명의 관객들로부터 기립 박수를 받는 본선 진출 감독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도 영화진흥을 뒷받침하는 재원을 확충하고, 이 재원을 바탕으로 국제 영화계가 주목하는 감독들의 원숙한 작품 제작과 역량있는 독립영화감독들의 제작을 구별해서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차별화 전략과 세계적인 배급망 또는 재정지원기구들과의 협력을 통해 제작하고 배급하는 세계화의 노력을 병행한다면, 작금에 집중되고 있는 한국영화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과 열기에 비추어 칸의 대상 수상은 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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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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